[정경뉴스=최진호 보스턴특파원] 지난 7월 6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현지시각)경,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아시아나 항공 소속 OZ 204편 보잉 777-200 ER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에 충돌해 308명의 탑승객(승무원 16명, 승객 292명) 가운데 중국인 여고생 3명이 사망(1명은 충돌 후 살아 있었으나,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차에 치여 사망)하고 18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찔했던 충돌의 순간
기수를 높게 든 채 낮게 고도를 유지하며 공항 비상 활주로로 진입하던 사고기는 꼬리 부분이 방파제에 완전히 잘려나갔다. 이어 꼬리날개 3개가 부러져 활주로에 떨어진 후 왼편 착륙바퀴가 부서져 날아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활주로 왼편 바깥으로 미끌어지던 기체는 충격으로 왼쪽 엔진을 잃은 뒤 마지막엔 지면 마찰에 의해 기수를 중심으로 공중으로 후미가 들려 270도 회전한 뒤 지상에 충격음을 내며 내려앉았다.

곧바로 오른쪽 엔진에 불이 붙어 승객 전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기내에서는 탈출 시도가 이루어졌다. 탈출용 슬라이드(에어백 방식) 두개가 안으로 터져 승무원 2명이 그 아래 깔리고, 꼬리 부분이 잘려나갈 때 승무원 3명은 이미 밖으로 튕겨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20년 경력의 최고 선임 승무원인 이윤혜 캐빈 팀장이 자신의 꼬리뼈 부상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승객들을 밖으로 대피시키는 한편, 기장과 함께 슬라이드를 나이프로 터뜨려 슬라이드 밑에 깔린 승무원들을 구출해냈다. 이후 승객들이 911에 다급한 전화를 걸어도 20여 분 이상 소방차나 구급차가 오지 않은 가운데, 김지연 승무원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충돌 직전 8초간의 미스테리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착륙 시도 당시 사고기의 낮은 고도와 너무 느린 속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고 당시 충돌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샌프란시스코 공항 인근 주민 프레드 헤이즈 씨는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당시 고도가 낮게 보였으며 기체 앞부분이 다른 비행기들보다 들려 있었다”고 밝혔다.

사고 전담조사를 맡은 NTSB(미 연방 교통안전위원회)는 충돌 34초 전부터 엔진 출력이 50%에 못 미쳤으며 속도가 권장속도인 137노트(약 시속 254 Km/h)에 훨씬 못 미치는 106노트(약 시속 196 Km/h)로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상에서 임무 교대 중이던 관제사의 경고는 전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활주로 상 계기착륙 유도장치(ILS)가 고장 나 있어 육안으로 시계 착륙 시도를 한 가운데 이강국 기장은 충돌 34초 전 조종석 앞쪽에서 곧장 들어오는 강한 불빛에 눈이 잠시 먼 상태였지만 계기판은 볼 수 있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보다 가장 의문이 드는 것은 “자동 속도조절장치(오토 스로틀- 자동차의 오토 크루즈 기능과 유사) 작동 유무였다. 사고기는 착륙 권장속도인 137노트로 암드(Armed:On, Off가 가능한 대기상태)에서 켜진(On) 상태였는가 꺼진(Off) 상태였는가가 관건이었는데 NTSB 허스먼 위원장은 더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은퇴한 보잉 777 비행교관인 앤소니 키터 씨는 칵핏 채터(Cockpit Chtter)라는 블로그에서 “오토 스로틀은 자동 비행기능이 해제되면 공전(Idle) 상태에 놓이게 되며 속도가 떨어질 경우 자동적으로 속도를 올려주지 않는 문제점이 있어 조종사들 간에 문제점으로 얘기된 적이 있었다”고 말하며 보잉사가 이 같은 문제를 비행 교본에 명시해놔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하대학교 유창경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통상 항공기는 활주로에 착륙하기 전 4Km 지점에서 고도를 낮추는 대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속도를 올리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 교수의 사고기 경로 분석에서 공항에 이르기 전 12~4Km지점에서 속도가 보통의 경우보다 50Km/h 정도 빨랐으며 활주로를 불과 600m 남긴 상황에서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자 기수를 들면서 출력을 최대로 올리는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속도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고도 회복을 못하고 실속(비행기가 비행 중 떠오르는 양력을 잃은 상태)하며 그대로 지면에 충돌하게 되었는데, 기수가 위쪽으로 들려 있어 비행기 뒤쪽이 먼저 닿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NTSB 발표에서도 조종사들은 충돌 9초 전 100피트(약 30m) 상공에서야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을 알고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대화가 오갔으며 3초 전과 1.5초 전 ‘고 어라운드(재상승 뒤 재착륙 시도)’를 외치며 출력을 올리다 결국 해안 방파제와 충돌했다고 밝혀졌다.

논란으로 얼룩진 NTSB
항공기 사고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원인 규명에 평균 2.8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NTSB는 이번 사고의 종합적인 분석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이례적으로 매일같이 생중계하듯이 발표를 했다.

데보라 허스먼 NTSB 위원장은 6일 동안 이어진 1차 조사 발표에서 “아직 조종사들의 과실로 단정 짓기는 이르다”, “조사는 한참 멀었다”고 전제를 달면서도 “오토 스로틀 장치가 고장 났다고 해도 상황을 인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국 조종사의 책임”이라고 언급해 기체 결함보다는 조종사 과실 쪽에 더 무게를 두는 발언을 이어나갔으며 사고 후 90초 이내에 승객을 모두 탈출시켜야 하는데 기장들이 탈출 지시를 하지 않았고, 첫 번째 슬라이드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허스먼 위원장은 사고기를 운행한 4명의 조종사 중 이강국 기장은 타 기종인 에어버스의 경우 9700시간의 비행기록을 보유한 베테랑이지만 사고기인 보잉 777기 비행시간은 단 9차례, 43시간이었으며 기장, 부기장석도 바뀌어 있었다고 조종사들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이에 아시아나 윤영두 사장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이강국 기장이 보잉 777 조종 경험이 3000시간에 달하는 이정민 부기장의 교관 책임지도하에 관숙 훈련비행 중이었기 때문에 비행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국제 관례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CNN이나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허스먼 위원장의 발표를 토대로 조종사의 훈련 미숙에 의한 실수인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를 연일 발표했다.

사고 조사를 위해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국토교통부의 최정호 항공정책실장은 11일 브리핑에서 “조종사의 진술을 즉시 공개하는 NTSB의 발표 방식이 추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발표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라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조종사 노조단체인 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 역시 9일 발표한 성명에서 NTSB가 부분적인 자료를 잘못된 방식으로 공개해 오해나 억측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NTSB는 한 인턴이 샌프란시스코 지역방송 KTVU에 조종사들의 이름을 비하하는 식으로 제공하여 인종차별 문제로 물의를 빚었으며, 7일 사고 당시 승객들의 구조와 대피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 승무원들이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도 8일 공문을 보내 조사에 방해가 되므로 아시아나 측에 언론 노출을 자제하라고 항의하고 기자회견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서 제출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미 항공업계의 이익과 피해보상 문제
이번 사고의 원인은 크게 ‘조종사의 과실’, ‘항공기의 결함’, ‘공항 시스템이나 관제센터의 잘못’의 3가지 정도로 좁혀 예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1년 이상 걸리는 복합적인 항공기 사고 조사를 100% 조종사 과실로 보이게 하는 NTSB의 발표에는 미 항공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의도가 이면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시간상 원인조사가 1년 이상 넘어가면 이미 대중의 뇌리에서 사건이 잊혀질 만한 시점인데 그동안의 미 항공기 제조사의 판매실적이나 공항 대여, 피해보상 문제 등으로 미국 항공업계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NTSB가 여론을 빠르게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년간 세계 항공업계에서 최고 서비스상을 수상해온 아시아나 역시 창립 이후 이번 국제선 최대의 사고로 인한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안전운항을 해왔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신뢰도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한다. 사고 원인이 조종사 과실이나 정비 불량으로 밝혀질 경우 향후 영업이익뿐 아니라 기업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규모가 예상보다는 크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지만, 영어캠프 차 한국 항공기를 이용 중이던 꽃다운 어린 나이의 중국 여고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탑승객과 승무원들이 중경상을 입거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는 정신적 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나 아시아나가 서로의 이해득실 차원보다는 사고 당사자들을 먼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위로하고, 공동으로 블랙박스 데이터의 판독과 정확한 사실만을 바탕으로 사고 원인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져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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