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뉴스=강경윤 기자] 요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개인과 기업의 명단이 한 독립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개된 명단에는 우리나라 유명 기업그룹은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까지 거론되면서 온 나라가 역외탈세로 떠들썩하다. 전문가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그것이 바로 탈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세피난을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현 정부가 역점으로 두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반할 뿐 아니라 조세정의에도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외탈세로 얼룩진 ‘페이퍼 컴퍼니 사태’를 조명해본다.

페이퍼 컴퍼니에 물 새는 세금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과 세금이지만, 달리 말하면 세금을 피하고픈 인간의 욕망이 죽음만큼이나 크다는 뜻도 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금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하거나 줄이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 조세피난처와 페이퍼 컴퍼니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대기업 오너 일가 명단이 공개된 데 이어 한 대기업은 그룹 차원에서 조세피난처를 통해 소득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기까지 하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6월 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한 인터넷 언론이 네 차례에 걸쳐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자제를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면서 “정부는 조속히 명단을 입수해 그 내용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엄중히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 지난 6월 4일 오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는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고 서류로만 존재하면서 회사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자금을 세탁하고 조세를 회피하거나 불법적인 탈세의 경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는 “페이퍼 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로서 기업활동을 하지 않아 실제 기업활동을 하는 회사의 수익을 페이퍼 컴퍼니로 돌리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의 문제가 발생된다”면서 “회계장부는 기업의 중요한 정보로서 이를 조작한다는 것은 투자자나 채권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줘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페이퍼 컴퍼니는 조세회피지역, 즉 조세피난처 국가에 설립되면서 더욱 문제시 되고 있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의 실제 발생 소득의 전부 혹은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대표적인 곳은 영국의 버진아일랜드와 버뮤다, 케이맨 군도, 채널 아일랜드 등으로 영국은 다국적기업의 탈세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내에 납부되어야 할 많은 세금이 해외로 유출되었음이 밝혀졌다.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세금을 결국 다른 부분에서 충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까지도 낳는다. 그동안 정당하게 법인세를 납부해왔던 이들에게 어긋난 조세형평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까지 주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탈세 논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탈세 문제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상임 조사위원회는 애플이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2009년에서 2012년까지 4년 동안 770억 달러의 순이익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애플의 자회사 ‘애플 오퍼레이션 인터내셔널(AOL)’이 4년간 300억 달러의 이익을 냈지만 어떤 나라에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 지난 6월 3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으로 마련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공동취재 기자회견'에서 김용진(가운데) 뉴스타파 대표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4차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5월 21일(현지시각)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애플의 글로벌 매출은 미국 내 매출의 2배에 달하지만 우린 글로벌 기업이 아닌 미국 기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단 1달러의 세금도 안 낸 적이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애플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과 퀄컴, 그리고 나이키 등 18개 기업의 조세회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조세 관련 시민단체인 ‘조세 정의를 위한 시민들’이 낸 보고서 ‘애플만이 아니다’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조세회피처에 해외 법인을 만들어두고, 해외 수익을 금융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조세회피처에 은닉된 재산은 총 18조5천억 달러라고 추정했고, 이 자산에 과세할 경우 미국 정부로 돌아가는 세수는 무려 1천56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세계은행 기준에 따라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세계 최극빈층 10억 명을 다섯 달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탈세 입증, 관건은 ‘절세’와의 구분
국세청 한 고위 관계자는 대표적 조세피난처 중 하나인 영국의 버진아일랜드를 업무차 방문한 후 “건물 하나에 회사 영문 이름이 적혀 있는 간판 수십 개가 빼곡히 걸려 있다. 그런 건물이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 미 상원 청문회에 참석해 "단 1달러의 세금도 안 낸 적이 없다"고 강변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출처=비즈니스인사이더 닷컴)

사실 페이퍼 컴퍼니 설립만으로 탈세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래전부터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 영역에 자리 잡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가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제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감시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역외탈세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거나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탈세 혐의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페이퍼 컴퍼니를 탈세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절세’를 위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는지, ‘탈세’ 목적이었는지를 구분해내는 작업이 관건이다. 세정 당국이 페이퍼 컴퍼니 설립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법무법인 바른의 윤경 변호사는 “무조건 페이퍼컴퍼니가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면서 “해외활동이 많은 기업의 경우 해외 선진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해운회사는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사들이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통상적으로 SPC(유동화 전문회사) 설립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만약 해운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더라도 선박이 담보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건설회사가 사업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야 할 경우가 있고, 해외 법인의 경영권 인수를 위해 투자펀드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으며, 중국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일부 탈세와 돈세탁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 악용 사례를 비난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축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경쟁국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세피난처를 활용할 때 우리나라 기업만 조세피난처를 활용하지 못하여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경 변호사는 “세금 탈루를 목적으로 하는 해외자산 반출행위를 막기 위해 감시와 제재,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면서,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신고 금액 기준과 대상 자산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 금융거래에 대한 감시 강화,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은닉계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ggangky@mjknews.com
 

강경윤 기자  ggangky@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