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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의 선택
정경NEWS | 승인 2013.05.31 10:22|(159호)

   
▲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본지 편집이사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달 1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행사에 참석한 일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김한길 대표를 향해 여기 왜 왔느냐며 심한 욕설과 함께 몸으로 막아서는 추태까지 보였다.

심지어 일부 지지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김 대표를 향해 던지기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일행과 함께 10여 분 만에 현장을 떠나고 말았다. 이는 친노 지지자 극히 일부의 실수나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볼일이 아니다. 이것이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요, 김한길 대표가 풀어야 할 당 혁신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 문화제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못 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당연히 친 노 지지자들이 먼저 초대해야 할 제1 야당의 지도자가 아닌가. 최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든다면, ‘노무현 정신’이라는 것을 눈꼽만큼이라도 존중한다면 김한길 대표가 참석할 때 자리를 안내하는 정도는 기본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막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과거 군사정권의 앞잡이들이 민주 인사들을 향해 거친 욕설과 행패를 부리던 그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짓을 친노 지지자들이 백주에 보여준 셈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다.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갈등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친노와 비노, 그 갈등의 생생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뜻이다.

계파 화합? 무슨 말인가
김한길 대표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봉변을 당한 이튿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시의 심경을 피력했다. 김 대표는 “한 남자 분이 팔꿈치를 앞으로 세우고 갑자기 저에게 돌진하면서 충돌해 가슴팍이 아팠는데 가슴속은 더 아팠다”면서 그들도 야당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모두 똘똘 뭉쳐도 힘이 부칠 판인데 서로 충돌하고 반목하는 현실이 더 아팠다는 얘기다. 옳은 말
이고 따끔한 지적이다. 그러나 김한길 대표의 당 혁신 방향은 근본적인 계파 갈등구조의 ‘대수술’이 아닌 듯하다. 김 대표는 오히려 당 화합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물론 화합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화합할 수 없는, 아니 당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적인 걸림돌을 도려내지 않은 채 화합만을 외
친다면 그것은 적절치 않다는 얘기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당 화합이 아니라 봉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김 대표는 이런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따름이다. 이제 당 대표 자리에 올랐으니 손에 피를 묻히기 싫다는 것일까.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기자들이 김 대표에게 당내 계파 청산과 관련해 묻자 김 대표는 “예전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파 갈등, 계파 안배 이런 말들이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면서 “제 생각에는 우리 당이 잘 통합돼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난해 총선과 당 대표와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대선을 거치면서도 항상 나왔던 얘기가 ‘친노 패권주의’ 문제 아니었던가. 심지어 김한길 대표도 그 피해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계파 갈등이 사라지고 있고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민주당에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친노가 자진해서 계파 해체를 결의라도 했다는 말일까.

물론 당 대표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날에, 그것도 친노의 본거지인 봉하마을에 가서 친노를 대놓고 문제 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분히 원론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으로 보기 좋게 말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게 김 대표의 본심이고 앞으로 민주당 혁신도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은 계파 화합이 아니라 계파 청산에 나서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청산은 피를 흘리는 대수술이지,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모처럼 만의 기회를 또 놓치나
김한길 대표 체제는 민주당 혁신을 위한 좋은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우선 민주당 지지율이 최악의 상황에 있다. 새누리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아직 밑그림도 없는 ‘안철수 신당’ 에도 한참 뒤처지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의 핵심 기반인 호남에서도 밀리는 형국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대대적인 당 혁신의 대의명분이 주어진 것이다. 게다가 김한길 대표 체제는 당 혁신에 대한 합법적인 전권을 쥐고 있다. 이미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서 결의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근래 민주당 대표가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원내 지도부도 비주류 측이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김한길 대표 체제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기본적인 당 혁신의 기조부터 오락가락하고 그 내용도 애매하다. 도대체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도 당 운영 방식이나 공천제도를 바꾸겠다고 할 것인가.

암을 제거해야 하는데 허벅지에 붕대를 감는 식이다. 그게 아니라면 또 정체성 운운하며 이념적 좌표를 놓고 갑론을박할 것인가. 언제까지 정체성 얘기만 할 것인가. 자신감이 없는 것인지 갑갑하다 못해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럴 거라면 비대위는 뭐하러 꾸렸으며 대선 평가위는 또 뭐하러 만들었다는 말인가. 김 대표가 봉하마을에 가서 민주당 통합이 잘되고 있다고 한 말은, 그래서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지난달 4일 새 대표로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에서 밝힌 일성은 당 혁신이었다. 그 혁신의 내용은 계파주의 정치 청산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변화의 폭풍에 몸을 던져 당의 운명을 건 사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60년의 전통만 빼고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김한길호 민주당이 출항한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사이 무엇을 버렸으며, 무슨 사투를 벌였는가. 한마디로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벌써 민주당 화합이 이뤄지고 통합이 잘되고 있다고 했다.

오판인지 자만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 혁신의 길은 간명하다. 친노를 칠 것인가, 아니면 함께 갈 것인가. 빨리 그것부터 정해야 한다. 괴롭겠지만 그 선택도 역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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