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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원칙과 입법권의 위기
정경NEWS | 승인 2013.05.09 11:28|(158호)

   
▲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본지 편집이사
[정경뉴스=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본지 편집이사] 근대 자유주의 정치 철학을 대표하는 로크(John Locke)는 기존의 낡은 체제에 대한 혁명적 전환을 꿈꾸면서 권력분립의 기획을 구체화시켰다. 명예혁명 이전에 집필했다가 그 후에 출간 된 <정부에 관한 두 가지 논고(Two Treaties ofGovernment)>가 그 산물이다.

로크는 여기서 대의제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했으며, 그가 특별히 주목한 것이 바로 입법권이었다. 우리 헌법 제40조를 보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제헌 헌법 때부터 명문화시켜 주권재민의 원칙을 구현하였다. 한국민주정치는 이렇게 싹을 틔워온 것이다.

그러나 과거 독재세력은 국회의 입법권을 보장하기는 커녕 철권통치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또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입법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명령이나 총구에서 나왔던 어두운 시절을 우리도 경험하였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이제 겨우 사반세기를 지났을 뿐이다. 비록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를 지녔어도 한국 민주주의는 놀랍도록 발전해왔다. 우리처럼 불과 몇 십년 만에 정치적 민주화를 성취한 나라도 별로 없다.

또 거꾸로 가려는가?
정치적 민주화의 수준을 말할 때 정치학자들은 주로 권위주의 정치와 비교하곤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탈권위주의의 수준이 곧 민주화의 수준이며, 권력 독점을 분화시키는 것을 민주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1987년 이후 한국정치는 확실히탈권위주의, 권력 분산의 속도가 빨랐다. 특히,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지형 변화는 한국 민주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공과 가운데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공헌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정치의 부활과 물리적 충돌로 난장판이 된 18대 국회, 그리고 국제기구로부터도 비난을 면치 못했던 인권 수준의 추락은 한국 민주정치의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으로의 변화와 동시에 강력한 정치쇄신을 표방함으로써 결국 대선 승리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낡은 보수’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따뜻한 보수’로 탈바꿈한 새누리당은 결과적으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수상하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국민 대통합, 경제민주화, 국가에서 국민으로의 국정운영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신뢰와 원칙, 그 어느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기 초라서 그럴까, 아니면 대선이 끝났으니 마음도 달라진 것일까. 최근 북한의 안보 위협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을 뿐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고 냉정하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특히 신뢰와 원칙을 강조해왔다. 마치 박 대통령의 아이콘처럼 각인돼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여야가 국회에서 법률안을 놓고 심의할 때 대통령이 마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듯이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원칙이며 국민에 대한 신뢰인가.

도대체 국회를 어떻게 보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전환하는 것이 이런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진전이 아니라 다시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국회도 입법부의 타이틀을 달기 초라할 따름이다.

새누리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9일부터 여야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같이 한 것은 좋은 일이다. 국정에 관해 당부도 하고 또 국회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소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열흘째 국회를 상대로 이른바 '식사 정치'를 벌였기에 뭔가 달라지는가 싶었다.물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밥만 먹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뭔가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메시지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식사정치가 끝날 무렵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까지 반대했던 윤진숙 해수부 장관을 임명했다. 임명 바로 전날에는 민주당 소속 상임위 간사단과 만찬을 했다. 그렇다면 만찬장에 갔던 민주당 의원들은 뭐가 되겠는가. 이것을 소통이라할 것인가. “국민들은 오늘 청와대에 있는 또 다른 홍준표를 보게 됐고, 안보와 민생에서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야당은 웃는 낯에 뺨 맞은 격이 됐다”고 했던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은 대목이다.

야당과 협상해야 하는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이런 모습을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리 청와대의 막강 파워에 눌려 있다고 하더라도 야당과 협상할 파트너는 여당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해, 민생과 안보를 위해 협조하겠다는 자세로 청와대 갔다가 ‘뺨 맞은 격’이 됐다는 야당의 반응은 곧 여당의 무능과 배신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에 다름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산적이고 책임있는 여야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야당이 안 되면 새누리당이라도 청와대에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다. 야당 대표들을 불러놓고 들러리 세우는 식은 안 된다고 말이다. 그것은 집권당으로서 새누리당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고 동시에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뺨 맞은’ 민주당은 지금 새누리당을 어떻게 보고 있겠는가.

하루빨리 새누리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 중심의 첫 번째는 입법부의 다수당이며 동시에 책임이 더 큰 여당으로서의 위상이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머리를 맞대고 의회정치와 민주정치의 발전을 견인할 핵심 주체이다. 그럼에도 청와대 눈치나 살피고 자신들의 의견도 묵살되며 심지어 야당 의원들까지 청와대 만찬을 후회하는 정도라면 국회의 위상이나 체면은 말이 아니다.

여당마저 입법부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입법권의 존엄성을 스스로 폄하한다면 누가 국회를 지켜줄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국민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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