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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다-우리가요’ 특강대중가요 연구해 박사학위 받은 가수 하춘화가 들려주는
강경윤 기자 | 승인 2013.03.29 10:23|(157호)

[정경뉴스=강경윤 기자] 우리에게 노래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는 사랑에 빠졌을 때나 마음이 아플 때 ‘노래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 속에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노래다. 이번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에서는 노래로 한평생을 살아온 가수 하춘화가 ‘대중가요’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소개한다.

   
 
대중가요는 소소한 일상생활 중 아침에 눈을 떠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틀면 가장 손쉽게 들을 수 있으며, 길거리를 걷거나 노래방을 가서도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단 하루라도 대중가요를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삭막하고 재미없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듯 대중가요와 우리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대중가요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았으며, 대중가수에 대한 평가 역시 이유 없는 하대나 폄하가 많았다. 하지만 대중가요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져 재평가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싸이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가는 등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인기는 상승세다. 현재 대중가요는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대중가요는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래지만, 정작 ‘대중가요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대중가요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대중들이 널리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좀 더 자세히 의미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사회상과 국민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중가요는 사회학이나 국문학에서 그 시대의 사회상이나 국민적 정서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도 활용된다. 

   
▲ 가수 하춘화 씨가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에서‘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다-우리가요’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사진=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캡쳐)

1930년대, 대중가요 역사 출발하다

대중가요는 1910년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찬송가를 번역해서 부른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본 음계의 영향을 받은 ‘번안 가요’가 생겨났지만 1930년대에는 조선인의 손으로 직접 작사·작곡하고 부른 ‘순전한 조선의 노래’인 ‘창작 가요’가 생겨났다.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1930년대를 출발점으로 삼아 8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1930년대에 창작 가요가 등장했지만 ‘창작가요 1호’를 놓고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 거론되는 곡으로는 국내 최초의 번안곡으로 염세주의적 가사를 통해 비극적 느낌을 살린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와 4분의 3박자 왈츠 리듬의 곡으로 당시 서민들의 감정을 담아내 인기를 끌었던 1929년 이정숙의 ‘낙화유수’ 등이 있다.

하지만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원곡을 번역한 번안 가요로 우리 창작 가요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당시 우리 대중가요의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이 곡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부른 곡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녀가 김우진이라는 극작가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다가 동반 자살을 한 사건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의 찬미’는 폭발적인 판매량을 올렸으며 수익성에 기반한 대중음악의 평가에 큰 획을 그었다.

이후 이러한 창작 가요들이 나옴과 동시에 시대의 슬픔을 달래주는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한국 가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장르인 트로트, 신민요가 등장해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19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1936년 고복수의 ‘짝사랑’ 등이 있다.

신민요는 우리의 전통 민요를 이어받은 장르다. 따라 부르기에 힘들다는 단점으로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민요는 그 당시 기생들이 많이 부른 곡이다. 신민요는 곡의 기교인꺾기와 애교, 즉 콧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는데, 대표적인 곡으로 1934년 박부용의 ‘노들강변’과 1934년 강홍식의 ‘처녀총각’ 등이 있다. 이렇게 트로트와 신민요는 일제 강점기에 양대 산맥으로 조선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해방과 6·25 전쟁, 1940~1950년대 애환을 담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전세가 악화되면서 일본인의 조선 예술인에 대한 강압과 압박은 심해진다. 일본은 전시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 예술인들에게 사상교육을 시키는 한편,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말을 쓰게 했다. 하지만 그 세월도 잠시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다.

당시 조선인들은 해방 후 기쁨에 찬 마음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귀국선에 몸을 싣는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노래가 당시 기쁨을 더욱 고조시켜준 1946년 손석봉의 ‘귀국선’, 1948년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이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 6·25 전쟁의 아픔을 겪는다. 남북이 분단되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 속에 트로트는 자연스럽게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비탄조로 흘러간다. 이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어루만져주었다.

당시 등장했던 노래로는 슬픔, 이별 등과 관련된 1951년 신세영의 ‘전선야곡’과 1953년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있다. 이렇듯 1950년대까지의 음악은 슬프고 안타깝고 가슴 아픈 곡들이 주류였다.

‘닐리리 맘보’와 ‘에레나가 된 순희’

1960년대 대중가요는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에 미군이 주둔하는 시기를 맞는다.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미국 방송이 송출되고 서양 근대음악 7음계의 영향을 받았다. 7음계의 사용으로 차차차, 스윙, 맘보 등과 같은 리듬이 다양해져 대중가요는 보다 풍요로워졌다.

뿐만 아니라 노래에 영어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1949년 현인의 ‘럭키서울’, 6·25전쟁 이후 구두닦이의 삶을 사는 전쟁 고아의 이야기를 노래한 1954년 ‘슈사인 보이’, 우리 전통 민요가락에 맘보 리듬을 붙인 1952년 김정애의 ‘닐리리 맘보’ 등이 대표 곡이다.

이런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미국의 군대문화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면서 ‘슬로우 슬로우 퀵퀵’으로 알려진 사교춤과 ‘자유부인’이라는 단어가 생기는 등 퇴폐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당시 사회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곡으로는 ‘에레나가 된 순희’라는 곡이 있다. 굉장히 순진하고 소박한 순희였지만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이름도 에레나로 바꾸고 역전 옆 카바레에서 직업여성이 된다는 내용이다.

1960~70년대에는 암울했던 시대를 탈피하고 근대화되고 건설적인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잘살아 보자’라는 국민적 의지와 함께 힘들고 암울한 현실을 탈피하자는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가요계에 창법이나 가사가 일본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띠고 있는 ‘왜색 가요’를 금지시켰다. 이는 대중가요금지법에 따른 것으로 1957년에 시작해 1996년에 폐지됐지만 그 사이에는 많은 곡들이 억울하게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남진, 나훈아, 하춘화 ‘리사이틀’ 공연

1970년대는 현대사의 격변기였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가슴속에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성공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지만 부모와 이별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등 도시와 시골,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 이중적인 감정이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 문화를 보면 ‘리사이틀’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가수의 리사이틀을 봐야만 명절을 지낸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리사이틀을 가장 많이 한 가수로는 남진, 나훈아, 김추자, 하춘화 등이 있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는 흰머리 가득한 노모를 놔두고 고향역을 떠나는 내용을 표현한 1972년 나훈아의 ‘고향역’,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곡으로 1977년 서울대 밴드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트로트 가요가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조인 포크송이 대학가요는 물론 대중가요에 들어오게 된다. 이때부터 대중들은 신선한 신인들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198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꿈이 하나하나 이뤄지면서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성황리에 개최한다. 컬러 텔레비전이 등장했고 당시 KBS에서 방영된 ‘이산가족 찾기’는 매스컴 사상 60% 이상의 시청률을 올렸으며 국민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1983년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88 서울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했던 노래인 코리아의 ‘손에 손잡고’가 있다.

세계 속에 빛나는 한국 대중가요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흑인 음악의 오리지널인 레게 음악이 들어온다. 이에 따라 랩 음악이 대중가요에 대표적으로 큰 변화를 주게 되는데, 당시의 대표곡으로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랩의 전성시대를 이끈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있다. 또한 1993년 김건모의 ‘핑계’는 자메이카의 전통음악인 레게를 가요에 도입해 탄생한 곡으로 대한민국에 레게 열풍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는 IMF를 겪고 경제적인 큰 변동에 의해 실직자 문제가 크게 대두된다.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노래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민들을 위로했다.

지금 21세기 세계는 우리나라를 주시하고 있다. 경제 대국으로의 부상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격과 국력은 신장했다. 뿐만 아니라 K-POP이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넣고 있다. 대중가요 발전에 좋은 기회인 만큼 겸손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더해 건강한 대중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대중이 없으면 대중가요가 존재할 수 없듯이 트로트에 대한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 그리고 후원이 필요하다.

ggangky@mjknews.com

강경윤 기자  ggangky@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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