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뉴스=강경윤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이른바‘택시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글로벌 코리아 시대를 맞아 국제규범에 맞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전례 또한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선에서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택시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어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가운데 현 정부는 택시지원법 대체입법을 예고했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을 진정 시키기는 어렵다는 예상이다.

택시업계가 총파업 결정을 내릴 경우 교통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
권 말기 불어닥친 마지막 시험대에서 이 대통령은 고심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내곡동 특검법’에도 행사하지 않았던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은 정부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대통령이 승인을 거부해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하는 권한이다.

거부권 행사는 지금까지 총 72차례의 전례가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임기 내 처음이다. 하지만 택시법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법제처 등이 모두 택시법 통과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어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국무회의에서 택시법 재의요구안(거부
권 행사안건)의 의결 건의를 수용해 최종 서명했다. 이대통령은 서명에 앞서“국무회의를 통해 왜 이렇게 (거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됐다고 본다”며 “이미 글로벌 코리아 시대인데 국제규범에 맞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택시를 정상화 시킬수 있는 방법은 이 택시법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면서“다른 방법을 통해 정상화
시킬 것이다. 다음 정부를 위해서라도 바른 길을 잡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의지를 밝혔다.

▲ 정부가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택시법) 개정안을 거부하기로 한 가운데 1월 22일 오후 광화문 도로에 택시와 청와대가 보이고 있다.

李, 택시법은‘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

국회는 지난 1월 1일 본회의를 열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택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55명 가운데 찬성 222명, 반대 5명, 기권 28명으로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택시법은 여야가 모두 지난 대선 과정에서 택시업계에 약속한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개정안의 핵심은 대중교통수단의 정의를‘노선을 정하지 않고 일정한 사업 구역 안에서 여객을 운송하는 데 이용되는 것’으로 변경함으로써 택시도 대중교통수단의 지위로 인정받도록 개정한 사항이다.

택시가 대중교통의 지위를 인정받으면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에 제공돼왔던 유가보조금이 지급되고 부가
가치세·취득세가 감면된다. 또 영업손실이 일정 부분보전되고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소득공제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게 된다.

▲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이 1월 22일 서울 세종로 서울정부청사에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일명 택시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임 실장은 이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택시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택시법을 대선의 표를 인식한‘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법안’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버스와 철도에만 지원되는 각종 재정으로 매년 1조9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돼 국가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운송수단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다.

택시법이 시행되면 택시사업자에 혜택이 돌아갈 뿐 수혜 주체도 명확지 않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택시법의 골자는 대중교통 인정 여부다. 대중교통이란 넓은 의미로는 기차, 자동차, 배, 비행기 등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용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버스, 철도, 항공편, 연락선 등의 정해진 일정과 노선에 따른 연결편이 마련되어 있을 때 그 이동수단을 대중교통 수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수송분담률이 9%밖에 되지 않는 택시를 버스(31%)와 지하철·기차(23%)처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매해 1조900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것은 유사 교통수단과 형평성에 위배될 뿐 아니라 정부와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택시법에 찬성하는 정치권과 택시업계는 이용자의 안전과 서비스 질 개선, 열악한 택시기사 처우를 개선
하기 위해서는 대중교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난폭운전과 승차거부는 열악한 택시기사 처우가 불러온 문제이기 때문에 경영환경이 안정되면 처우가 개선되고 그에 따라 서비스 질은 당연히 상승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낙수효과다.

택시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택시법 입장에 대해“택시법이 통과하면 연간 1조9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허구며, 당장 추가되는 예산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국회 국토위 법안심사 과정에서 이미 국토부 관계자는 법 개정에 따라 당장추가로 투입되는 예산은 없다고 밝혔다”며“소요 예산은 향후 정부와 국회가 정책을 입안할 때 사안별로 엄격히 책정할 것이기 때문에 소요 예산이 1조9000억원에 이른다는 것은 정부가 부풀린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택시의 수송분담률이 9%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이는 개인교통수단인 자가용을 포함해 계산
한 것으로 공공교통수단과 비교하면 택시의 국내여객 수송분담률은 29%, 공로수송분담률은 39%라고 주장했다.

정부 택시지원법 제시…여전히 진통 예상

이명박 대통령은 택시법 거부권 행사 후“다른 방법을 모색해 택시산업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정부는 택시법의 대체법안으로‘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안(택시지원법)’을 제시했다. 택시업계는 물론 복지기금 마련 등 운수종사자에 대한 직접 지원방안을 담은 당근책으로 볼 수 있다.

주성호 국토해양부 제2차관은 지난 1월 22일 택시법의 국회 재의를 요구한 국무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택시업계 종사자의 열악한 근로여건 등을 분석해 종합대책을 마련했다”라며“대체입법안인 택시지원법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택시지원법에 따르면 그린벨트 안에 정부가 건설비의 30%가량을 지원하는 택시 공영차고지가 설치되며차량 취득세, 프로판가스(LPG) 개별소비세도 감면해준다.

뿐만 아니라 택시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면허 총량제도 강화한다. 택시 과잉공급 지역에서 개인택시 면허의 양도와 상속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현재 전국에서 운행하는 택시 25만대 중 20%를 줄
여야 과잉공급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인구 1000명당 택시 비율은 서울이 6.9대로 뉴욕(1.7), 런던(2.2), 파리(2.6), 도쿄(4.9)보다 훨씬 많다.
택시법에 없던 택시종사자 지원책도 추가되었다. 그간 택시회사는 유류비, 세차비 등의 부담을 종사자에
게 전가해왔지만 앞으론 이 같은 관행이 금지된다.
 
업계와 협의를 통해 현재 12시간인 근로시간을 10시간 이하로 낮추는 등 장시간 근로 방지도 의무화한다는계획이다. 또 운수종사자의 복지기금 설치 및 운영을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 건강검진과 자녀 학자금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승차거부, 부당요금 징수에 대한 처벌 강화, 성범죄자 완전 퇴출 같은 서비스 개선안도 들어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체법안으로 택시지원법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택시업계는 1월 22일 공동성명를 통해“1월 임시국회에서 택시법 개정안을 재의결해줄 것을 촉구한다”며“부산, 광주, 서울 지역에서 차례로 30만 택시비상합동총회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택시업계는 1월 30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1차 총회에서 영남권 택시의 파업을 시작으로 2월 1일 광주 총회에서는 호남권 택시가 각각 하루 동안 운행을 중단하고 이어 2월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3차 총회부터는 전국 모든 택시가 운행을 접고 무기한 파업에나설 예정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택시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한 1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인택시연합회관에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4개 택시 단체 대표가 비상대책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택시법이 택시업계 3차 총회 이전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업계가 예고한 대로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의 택시가 일제히 멈춰서게 되면 택시 이용객들의 불편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李대통령, 임기 말 여·야와 힘겨루기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2/3 이상 찬성하면 이 대통령은 즉시 법안을 공포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여·야는 이명박 대통령이 택시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나타내면서도택시법 재의결을 놓고 온도 차이를 나타냈다.

새누리당은 일단 정부 입장을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업계 의견을 수렴해 만든 대체법안인‘택시운송사업 발전지원법’을 검토해본 뒤 재의결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국무회의와 택시법재의요구안 의결은) 국회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도“정부의 대체입법 내용을 보고, 업계와 민주통합당의 생각을 들어본 뒤 최종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도“정부가 택시지원 특별법을 만들어 택시업계와 협의를 한다고 하니 지켜볼 것이며, 택시업계가 수용하지 못하면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택시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각오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날 열
린 원내대책회의에서“이 사안은 이명박 대통령도 5년 전에 실정을 파악해 공약한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후보자 시절 여러 번 구두로 공약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사회적 합의를 깬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박 후보 당선 이후 의원 222명이 법안에 찬성해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며“거부
권 행사는 어렵게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깨고 다시 갈등을 촉발시킬 뿐이며, 민주당은 재의결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지난 1월 22일 택시법에 대한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자신이 대
선 기간 택시업계에 대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당선인의 한 측근은“이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 비서실 내에서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현 정부에 대해 어떻게 하라는 것은 당선인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으로 정리가 됐다”면서“또 법과 관련된문제는 국회에서 여·야 간에 이야기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다만 공약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선거 기간 구두로 한 택시업계 처우 및 업무환경 개선 약속들은 (당선인이) 지켜나간다는 입장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법안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인 만큼 당선인 신분에서 가타부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공약은 지키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여·야가 대통령 거부권까지 뒤집어 가며 택시법을 다시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
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 대신 정부와 더불어 30만 택시업 종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대체입법을 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ggangky@mjknews.com

강경윤 기자  ggangky@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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