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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安昌浩, 1878~1938) 흥사단을 창립하다
[0호] 2010년 07월 29일 (목) 00:00:00 박미라 기자 mirakko@mjknews.com
안창호는 1878년 대동강 하류 평안남도 강서 도롱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는 도산(島山)이고, 안흥국(安興國)의 셋째 아들이다. 선대는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8세까지 가정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9세에서 14세까지는 강서군 심정리에 머물며 김현진(金鉉鎭)에게 한학을 배웠다. 이때 서당 선배인 필대은(畢大殷)과 알게 되어 그로부터 민족주의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서양 열강들이 조선으로 진출하는 것을 보고 침략세력에게 먹힘을 당하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고, 그 힘은 겨레 얼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국민정신 교육과 의식개조에 앞장서게 되었다.
안창호는 1895년 17세 때 서울로 올라와 선교사 언더우드가 설립한 경신학교에 입학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였고, 이를 통해서 국가와 민족에 관한 사상적 무장을 강화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신지식을 터득한 자가 곧 겨레 얼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한인동포들에게 우선 생활의 낙후함을 지적하여 문명인의 생활의식을 갖고, 수준을 높이도록 끊임없이 주의를 줌으로써 이후 교포들의 생활은 향상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많은 번영이 있었다. 안창호는 과수원에서 귤을 따는 교포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오. 겨레 얼을 갖는 첩경입니다”라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겨레를 이해하는 진실정신 곧 안창호 정신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안창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업적은 1913년 5월 흥사단을 창립한 것이다. 흥사단은 민족대기업의 기초 작업을 위한 기관으로서 독립운동을 위한 실력을 양성하려는 조직이자 안창호 사상의 결정체인 것이다. 흥사단의 역사적 의미는 첫째, 안창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고질이 지방적 파쟁과 분열에 있음을 통감하고 무엇보다도 협동과 단결이 겨레 얼 정립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이에 그는 흥사단을 조직할 때 전국 대표 8명을 구성하여 지방적 파쟁의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둘째, 무슨 일을 할 때 뒤에서 수고는 내가 하고 공은 남에게 돌린다는 것이 안창호의 철학이었다. 흥사단은 그가 만든 조직이지만 자기의 이름을 규약 어디에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결코 허영과 명예를 탐내는 영웅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공손과 겸손을 최대의 덕목으로 가르쳤다.
셋째, 한국인이 조직한 단체로서 100년의 역사를 갖는 것은 오직 흥사단뿐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인물 중에서 조직의 필요성과 조직의 원리와 방법을 체험으로 알고 그것을 구현한 인물이 안창호이다. 흥사단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은 그가 구상한 흥사단의 근본이념과 조직 원리가 비범하고 투철하였기 때문이며, 후계자들이 그의 정신을 잘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겨레 앞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안창호는 평생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겨레 앞에 거짓이 없게 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나라가 흥성하게 잘되고 잘살려면 역사의 주체인 국민의 의식수준과 겨레의 얼을 높여야만 어떠한 장애요소도 벗어날 수 있다”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최고의 민족 즉 일등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혁신·반성·비판·자각·겨레 얼의 확인이 뒤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항상 인간혁명을 강조한 안창호의 철학은 겨레 얼 속의 참·사랑·봉사의 3대 원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첫째, 무실·역행·충의·용맹의 4대 정신이다. 무실역행을 근본생명으로 삼는 충의롭고 용감한 남녀를 만들어야 뒷날 국난을 당하였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행동철학은 진실과 참된 행동에 힘쓰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둘째, 사랑의 정신을 충만하게 갖자는 의미인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랑사회를 만드는 근본이 곧 사랑의 실천이며 그 전폭적인 이상이라고 설명하였다.
셋째, 민족에 대한 봉사정신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되 작고 큰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민족이라는 대공(大公)을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무조건적인 봉사를 권장하였다. 여러 가지를 따지다보면 애국의 참된 마음도 엷어지고 퇴색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진실을 실천하는 만인의 사표가 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에 있던 안창호는 자금을 갖는 임정으로 와서 구미식 민주공화정치에 합류하였다. 이때 그는 나라와 민족을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임정의 노동국 총판에 임명되어 6대 행동강령을 강조하면서 실천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 임정은 재정적 곤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쌓이고, 파벌대립과 학벌주의 등 내분까지 겹쳐서 임정 반대파들이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임정의 어려움을 수습하기 위해 1932년 김구·이동녕 등의 주도로 한인애국단의 특무공작인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자 안창호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안창호는 고문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출옥한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한달 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총검거에 나서자 그도 흥사단의 동지들과 다시 투옥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치료를 받던 중 61세로 운명하였다.
안창호는 겨레 얼을 견지하는 큰 사업 이외에도 백년교육의 실천가이자 이상촌 건립과 사회개혁, 산업혁명을 제창한 민족의 등불이며 나라의 자랑이다. 이렇게 그는 만인의 사표로 살았다. 그가 겨레 얼을 누구보다 착실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참 일성(一誠)의 인간이었다. 그가 가장 미워한 것이 거짓이었고,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이 진실이었다. 거짓이 협잡을 낳고 협잡이 불신을 낳고 불신에서 모든 불행이 생김으로 우리나라를 망친 최대 원인의 하나가 거짓말 때문이라고 확신하였다. 또 그는 사랑의 인간이었다. 나라를 사랑하고 동지를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연구하라는 것이 그의 평생소원이었다. 그의 동지사랑은 특별하였는데 동지에 대해서는 물질과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근엄한 극기 수양의 인간이었다. 무심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라는 생각과 행동을 싫어하였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말이나 행동에도 결코 예의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으며, 항상 절도가 있고 질서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겨레 얼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의 힘은 곧 겨레 얼에서 출발한 것이다. 노력하고 정성껏 수양하여 자기 스스로를 인격자로서 높이 끌어 올렸던 것이다.
안창호는 평생 아내에게 치마감 한번 사준 적이 없었고, 자식에게 연필 한 자루를 사줄 겨를도 없이 민족의 독립에 일생을 바쳤다. 국가가 가족보다 더 비중이 있었다. 자기 한사람의 행복과 가정의 안락을 뒤로 한 채 겨레 얼을 찾아 구국에만 몰두한 그의 삶은 진정한 애국인생이었다.
※자료:(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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